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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의 거짓말
    소설 2025. 11. 1. 20:34

    난 여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초등학생때 고백은 많이 받아 봤다.
    하지만 다 거절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항상 고백을 거절하고 나면 "왜?" 라고 다시 물어본다.
    그럴때 그냥 연락을 끊고 다녔다.
    남중을 가고나니 남자가 대하기 쉬웠다.
    그래서 남고를 가려고 했지만 엄마가 일반고등학교를 보내버렸다.
    학교에 들어간 순간 주변에 친구들과 선배들이 날 바퀴벌레 보듯 보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 일수도 있다.
    나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고 친구도 없었고 공부에만 집중하였기에 자취 시작하고 스타일엔 전혀 산경을 쓰지 않고 내가 편한대로 입고 씻고 다녔다.
    그러니 날 벌레 보듯이 보겠지.
    하지만 그런 나를 친구로 받아주는 친구가 있었다.
    김다윤 이었다.
    "안녕? 넌 이름이 뭐야?"
    "기.. 김중한"
    "너 여기에서 아는애 없지."
    "ㅇ..응"    
    "그럼 나랑 친구하자 난 김다윤이야"
    "그래"
    나의 첫 여사친이자 친구였다.
    엄마한테 이말을 하니 못믿는 눈치였다.
    하긴 여자라고는 나한테 엄마와 2살위인 누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다윤은 뭔가 달랐다.
    걔가 먼저 말을 걸고 나한테 친구하자고 했을때 난 순간 생각보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난 이런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여자애가 나한테 먼저 말을 걸고, 친구하자고 하는 게 처음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피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 후로 다윤이랑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다윤이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안 쓰는 듯했다. 늘 먼저 인사하고, 밥 먹을 때 옆자리로 와 앉고, 가끔은 사소한 얘기도 꺼냈다.
    그 일을 계기로 좀 꾸미고 다니며 몇몇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중한아, 오늘 도시락 반찬 뭐야?”
    “그냥 계란말이.”
    “맛있겠다. 엄마가 싸주셨어?”
    “응.”
    “우리 엄마는 요즘 맨날 김만 싸줘.”
    그렇게 평범한 대화였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랑 이런 얘기를 나눈 게 꽤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윤이는 항상 밝고 활기찼다. 그런데 가끔, 내가 말할 때마다 눈을 살짝 빛내는 게 느껴졌다. 그게 뭔가 특별한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나를 진심으로 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여자는 단지 다른 성별일 뿐,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다윤이랑 얘기할 때도 편하고 좋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 끝나고 복도에서 다윤이랑 마주쳤다.
    “중한아, 오늘은 같이 집 갈래?”
    “어… 그래, 뭐.”
    “진짜? 너 혼자 가는 거 좋아하잖아.”
    “오늘은 그냥 심심해서.”
    그 말에 다윤이는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가는 길, 다윤이는 계속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너, 학교 처음 왔을 때 완전 조용했잖아. 그래서 말 걸기 힘들었어.”
    “그래? 난 그냥 사람 많은 게 싫었을 뿐인데.”
    “이젠 안 그런 거 같아. 요즘은 표정도 좀 부드러워졌어.”
    그 말에 나는 잠깐 멈춰 섰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다윤이도 느낀 걸까?

    “그런가… 잘 모르겠네.”
    “응, 근데 난 그게 좋아.”
    다윤이는 그렇게 말하곤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얼굴이 잠깐 붉어진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못 본 척했다. 아니, 그냥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날 이후로 다윤이와 나는 더 자주 같이 다녔다. 나는 단지 친구로서 즐거웠고, 다윤이도 웃는 얼굴로 내 옆에 있었다.
    하지만 가끔 다윤이가 내게 건네는 짧은 시선, 그 눈빛 속엔 뭔가 다른 감정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뭔지 알 것 같기도 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그냥, 지금처럼 친구로 지내는 게 제일 편했으니까."
    시간이 조금 흘러, 나는 여전히 다윤이랑 친구로 잘 지내고 있었다.
    예전처럼 혼자 밥을 먹는 일도 없었고, 쉬는 시간에 말 없이 앉아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만큼 다윤이가 내 주변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친구 민수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꺼냈다.
    “야, 중한아. 너 소개팅 한 번 나가볼래?”
    “소개팅?”
    “그래! 내 사촌이 친구랑 같이 한다는데, 남자 한 명이 비었대. 그냥 밥 먹고 얘기만 하면 된대.”

    처음엔 웃어넘기려 했는데, 민수가 계속 귀찮게 굴었다.
    결국 난 ‘그냥 밥 먹는 거면 뭐…’ 하면서 나가기로 했다.
    그게 내 인생 첫 ‘소개팅’이었다.

    그날 점심시간, 내가 그 얘기를 무심코 다윤이한테 했다.
    “아, 나 이번 주말에 민수 따라 소개팅 나가.”
    “...소개팅?”
    다윤이가 젓가락을 잠깐 멈추더니 나를 봤다. 표정은 평소처럼 덤덤했지만, 뭔가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응. 그냥 민수 사촌이 친구랑 같이 하는 거라네. 뭐, 별건 아니래.”
    “아… 그래? 재밌겠다.”
    다윤이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뭐 재밌긴… 그냥 밥이나 먹는 거지.”
    “그래도 좋은 인연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조금 흔들렸다.

    주말, 소개팅 날.
    나는 긴장도 안 됐고, 그냥 민수랑 밥 먹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근데 막상 자리에 가서 소개팅 상대를 봤을 때, 정말 놀랐다.

    “어… 너, 혹시 김하린?”
    “어? 중한이?”
    하린은 다윤이의 중학교 친구였다.
    예전에 학교 축제 때 잠깐 본 적이 있었고, 다윤이랑 같이 다니던 그 활발한 친구였다.

    “세상 참 좁네. 다윤이랑 같은 반이었다며?”
    “응, 완전 절친이었지. 근데… 너, 다윤이랑 친하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소개팅 나온 거야?”
    “그게… 그냥 민수가 끌고 와서.”
    “하하, 너 재밌다.”

    그녀는 성격이 활발했고, 말도 잘 했다. 나도 대화는 나름 잘 이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다윤이가 생각났다.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혹시 내가 소개팅 나갔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을까.

    다음 날 학교에서 다윤이를 만났다.
    “어제 어땠어?”
    다윤이는 평소처럼 웃으며 물었다.
    “그냥 밥 먹고 끝났지 뭐. 별로 특별한 건 없었어.”
    “그렇구나.”
    “근데 신기하더라. 상대가 네 중학교 친구였어. 김하린이라고—”
    “하린이?”
    그녀의 손이 잠깐 멈췄다.
    “응, 그 하린이.”
    “...진짜 세상 좁다.”
    다윤이는 그렇게 말하곤 조용히 웃었다.
    근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 어색했다. 평소 같으면 장난도 치고 더 물어봤을 텐데, 그날은 그냥 조용했다.

    그 후 며칠 동안 다윤이는 여전히 밝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내가 말할 때 고개를 돌리거나, 괜히 다른 친구랑 얘기하는 척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마음이 답답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친구로서 편하게 지내고 싶은데,
    요즘은 다윤이 얼굴을 보면 괜히 신경이 쓰인다.

    하린이의 웃는 얼굴보다,
    다윤이가 잠깐 지었던 그 어색한 미소가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며칠 뒤, 하린이랑 같이 매점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린이는 평소처럼 잘 웃고, 나도 그냥 맞장구치며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진짜 너무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다윤이였다.
    그녀 앞에는 하린이가 서 있었다.
    둘 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너 그 얘기 왜 했어?”
    “무슨 얘기?”
    “중한이한테 내가 그런 말 했다고. 그거 다 거짓말이잖아.”
    “그냥 농담이었어, 왜 그래?”
    “그런 농담을 왜 해? 걔는 그걸 진짜로 믿었단 말이야!”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다.
    뭐라고? 거짓말이라고?
    나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린이는 나를 본 순간, 얼굴이 굳었다.
    “중한아, 그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쿵쿵 울렸다.

    다윤이에게 달려가야 했다.
    지금이라도 가서 말해야 했다.
    “미안하다.”
    “내가 오해했다.”
    그 한마디라도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다윤이는 이미 가방을 메고 있었다.
    “다윤아—”
    그녀가 잠깐 나를 봤지만, 바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집에 가야 돼. 학원 늦겠어.”
    그 말투는 예전과 달랐다.
    따뜻하지도, 웃음 섞이지도 않았다. 그냥 차분했다.

    “그때 말이야… 내가 그 얘기 들었을 때—”
    “알아. 하린이가 말했지?”
    “응… 근데 그게 거짓말이었어. 방금 들었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괜찮아.”
    그녀는 작게 웃었다.
    “처음엔 속상했는데, 이젠 괜찮아. 그냥 그런 일도 있나 보다 싶어.”

    그녀의 웃음은 진짜였지만, 어딘가 비어 있었다.
    “다윤아, 나—”
    “중한아.”
    그녀가 내 말을 끊었다.
    “우리 그냥 예전처럼 친구로 지내자. 그게 제일 편한 거 같아.”

    그 말이 너무 쉽게 들렸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꽉 막혔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윤이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햇살이 교실 창문으로 들어왔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눈이 따갑게 아팠다.

    하린이의 거짓말은 금방 잊혔지만,
    다윤이의 그 마지막 웃음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하린이와의 연락은 점점 끊어졌다. 다윤이와의 관계가 멀어진 뒤, 하린이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나는 그녀의 행동에 점점 더 의심을 품게 되었다. 특히, 하린이가 말한 거짓말이 내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동안의 관계가 어떻게든 일방적인 것이었음을 느꼈다.
    그런데 얼마 후, 민수가 내게 불쑥 연락을 해왔다. "야, 중한아. 하린이가 다윤이한테 못된 짓 하는 거 봤어." 그의 말에 나는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하린이가 다윤이를 괴롭힌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런데 민수가 내게 보내준 영상 속에서, 하린이가 다윤이를 무시하고, 때로는 모욕적인 말을 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모든 것이 하나씩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린이는 내게 감정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나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민수는 내게 말했다. "중한아, 이게 다윤이에게 진짜 상처가 될 거야. 내가 다윤이한테 가서 얘기할까?" 그 말을 듣고 나는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다윤이가 상처를 받았다면, 내가 그녀에게 해줘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나는 민수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다윤이에게 연락을 했다. "다윤아, 미안해." 그 말 한마디가 너무 어려웠지만, 내 마음속에서 꺼내고 싶었다. 그동안 내가 다윤이를 잘못 대했던 것, 그녀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다윤이와 나는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는 조금 긴장한 듯 보였지만, 예전처럼 여전히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너 요즘 바쁘지?" 라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응, 조금. 근데 나도 너랑 얘기하고 싶었어." 그 말에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다윤아, 나... 사실 너에게 너무 미안해. 내가 잘못한 게 많아." 내가 그 말을 꺼내자 다윤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뭘 그렇게 미안해?"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하린이랑... 그 일." 나는 그동안 하린이와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얘기했다. 다윤이는 조용히 내 말을 들으며 때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랬다는 걸 몰랐어. 근데 그게 왜 미안해?" 다윤이는 여전히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네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어. 내가... 너에게 그런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미안해." 나는 고개를 숙였다.
    다윤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중한아, 내가 다 알았어. 사실 나도 네가 처음에 나한테 왜 그렇게 무뚝뚝했는지 이해했어. 근데 지금은 네가 고백하지 않아도, 그냥 내가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뭐?" 나는 당황해서 물었다.
    "그냥, 우리가 둘이서 더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야. 내가... 너에게 가고 싶다." 다윤이의 그 말에, 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마음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다시 가까워졌고, 하린이와는 완전히 연을 끊었다. 하린이는 다윤이에게 한 행동을 사과하려 했지만, 다윤이는 이미 그와의 관계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더 이상 그녀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다윤이와 나는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우리는 진정한 관계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다윤이가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다윤이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했고, 결국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열고 진정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다시는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다윤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고, 그녀는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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